게재일 : [23-01-12] 조회수 : 1161
조총련 역사적 범죄 검증… 북송 63년 심포지엄
북한 당국과 조총련의 북송 책임을 묻는 '역사 검증 심포지엄'(사진)이 9일 동경의 한국중앙회관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조총련이 김일성 환갑(72년 4월) 식탁에 생조공품으로 바친 조선대학교생 200여 명의 문제를 다뤘다. 주최한 민단중앙본부는 조총련의 역사적 죄과를 검증하고 인권문제로 여론을 환기시킴으로써 북송동포들을 하루빨리 비참한 상황에서 해방시키겠다고 밝혔다.
김일성은 1972년 4월 15일이 만 60세인 환갑이었다. 조총련은 축하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선발한 조선대생 200여 명을 오토바이 부대 60여 명과 함께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대로 헌상했다. 조총련은 각급 기관과 학교, 지역 단위로 전년인 71년부터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 선물 캠페인을 벌여 왔는데 이 조공품이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조선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박두진 씨(코리아국제연구소 소장)는 200명 부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다며 이같이 기조보고를 했다.
선별작업은 1971년 12월 말 학생 귀향 직전의 일이었다. 담당 교관이 대학 구내 골방으로 300명을 개별 호출해 전달했다. 이듬해 초 이 중 100명은 달아났다.
대학 측은 남은 200명에게 엘리트 의식을 심어주고 철저하게 세뇌했다. 선전 문구는 ‘김일성종합대에 들어갈 수 있다’ 였다. 대부분의 학생은 의심하지 않았으나 15명이 탈락. 최종적으로 185명이 니가타항에서 출발해, 다시는 일본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중에는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이 사실은 북한을 방문한 조선대학교 교원이 직접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귀환 이주였고 본질은 북송이었다. 박 소장은 "김일성 개인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 일절 밖에 알리지 않고 당사자를 속여 데려간 점에서 사기였다" 며 조총련의 책임을 재차 단죄했다.
또 다른 패널인 야마다 후미야 씨(북한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 명예대표)는 “62년 정도까지는 열기 속에서 설사 허위 선전에 놀아났다고 해도 자신의 뜻으로 북으로 건너갔다고 할 수 있지만 조대생은 다르다. 조총련의 조직적 강제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대규모 납치사건이었다. 납북자 구출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고 호소했다.
심포지엄에 앞서 양영희 감독이 북으로 건너간 친오빠3명과 가족들의 이야기을 담은 '가족의 나라'(2012년)가 상영됐다. 양 감독의 맏형도 김일성에게 받쳐진 185명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