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1-09-22] 조회수 : 1739
교토국제고 새로운 역사… 고교야구대회 4강 한국에서도 연일 보도
[ 준결승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교토국제고 야구부 ]
[ 81년 여름 호토쿠학원과 교토상업의 결승전. 양 팀에는 7명의 재일동포 선수가 출전했다. ]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교토국제고교(이융남 이사장 · 박경수 교장)는 하계 고시엔 첫 출전에 4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과 기억을 새기며 봄, 여름 연속 꿈의 무대에서 크게 약동했다.
하계 고시엔 첫 경기인 마에바시이쿠에이(군마)에게 1-0으로 승리. 2회전은 니쇼가쿠대학부속고(히가시도쿄)에 연장 10회에 6-4로 이겨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8강전의 쓰루가케히(후쿠이)전은 9회말 끝내기 승부를 내건 교토국제고 다운 싸움이었다.
동교의 전신은 민단계의 민족 학교 「교토 한국 학원」이다. 2004년에 일반적인 사립고가 되어, 현재의 교명으로 변경되었다.
이 학교에 야구부가 창부된 것은 1999년. 격감하는 학생수의 증가를 목표로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외국인 학교 경식야구팀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에 가맹했다. 그해 여름 교토대회에서는 명문 교토 세이쇼고와 첫 경기에서 0-34로 5회 콜드패. 당시 교토 세이쇼고에는 현재의 국제고를 이끄는 코마키 노리쓰구 감독이 선수로 있었다.
그런 '대패 데뷔'라는 세례를 받은 교토국제고는 야구부 창단 5년째인 2003년 여름, 교토 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당시 이양강 주장이 이 대회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선수 선서를 한 희귀성 때문에 언론에 크게 오르내렸다.
이번 여름 고시엔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실력 있는 팀' 임을 증명한 한편,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에 울려퍼진 것도 주목받았다. 그런 화제성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도 '한국어 교가, 일본 전국에 퍼지다', '한국계 교토 국제고, 꿈의 무대 · 여름 고시엔 진출', '교토 국제고, 고시엔 한국계 첫 4강' 등 교토 국제고의 쾌거를 연일 전했다.
영광의 명승부 81년의 감동 재현
사실 여름 고시엔에서 재일동포들이 영광의 명승부로 기억되는 경기가 있다. 1981년 여름 호토쿠학원과 교토상업(현 교토첨단과학대 부속고교)의 결승전이다.
이 결승을 치른 양 팀에는 7명의 재일동포 선수가 출전했다. 결승전 스코어보드에는 교토상업의 정, 한, 가네하라, 호토쿠학원의 다카하라, 가네무라, 니시하라, 오카베 등 교포들의 이름이 늘어서 전국의 교포들을 들뜨게 했다.
올해 교토국제의 쾌거는 모양새는 다르지만 당시를 아는 동포들에게는 그때의 흥분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벌써 내년 봄의 전국 대회로 연결되는 추계 교토부 대회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1, 2 학년이 주력인 교토 국제고팀은 여름의 고시엔 출전 선수의 반이상이 남아 있어 새로운 쾌거가 기대된다.
전국 단원들의 성원에 감사
이융남 교토국제학원 이사장과 박경수 교장이 전국 단원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민단과 본보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하에 발췌를 소개한다.
◆이융남 이사장
“전국 단원 여러분들의 성원 감사합니다. 춘계대회에 이어, 여름에도 뜨거운 응원과 많은 지원을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 활약은 교토 지역에서도 16년만의 쾌거입니다. 선수들은 본교 역사의 새로 쓰고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사장을 맡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리고 선수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내년 춘계대회에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원 여러분들도 기대 많이 해주시고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박경수 교장
“1999년 학생 수 증가를 목적으로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이제는 야구 명문고로 성장한 것은 큰 자랑입니다. 은퇴하는 3학년생들도 앞으로의 진학 등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육자로서 가장 기쁜 일이며 선배를 위해 열심히 싸운 후배들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성원을 보내주신 전국의 재일동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교토와 긴키뿐 아니라 일본 최고가 되기 위한 지원 방안을 장기적으로 모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