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변화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군사연구실장

독재자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북한을 이끌어갈 것으로 점쳐지는 김정은 후계정권의 안정과 대내외 정책 방향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김정일 급사(急死) 이후 새 지도자로 추대된 김정은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유훈통치를 했던 것처럼 아버지 김정일의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주력할 것이다. 과거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3년 동안 김일성의 공식 직함을 승계하지 않았던 전례를 이어받아 당총비서나 국방위원장으로의 추대는 뒤로 미룰 가능성이 크지만, 당중앙군사위원장에 추대돼 북한을 통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군정치(先軍政治)가 기본 통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너무나 어려운 숙제를 유산으로 남겼다. 북한이 당면한 최악의 식량난과 경제난, 핵(核) 문제 및 국제사회의 제재, 지난 3년 동안 각종 도발로 인해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는 남북관계, 그리고 김정일의 유훈이 돼 버린 2012년 강성대국 건설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을 김정은 후계정권이 넘겨받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김정은 정권의 선택은 결국 선군정치에 의한 강력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정권이 위협받을 경우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권 유지가 궁극적인 목표인 이상 아버지 김정일의 대내외정책을 고수해 핵보유 정책을 지속하면서 대외적으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며, 한국에 대해서도 군사적 대결 구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김정은 정권이 현상유지 정책을 답습할 경우 대외적으로는 국제질서에서 세계화가 가속화함에 따라 북한의 고립정책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북한 경제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핵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하는 이상 남북관계도 발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며 군사적 긴장은 지속될 것이다. 즉, 북한 체제의 위기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러한 체제위기 상황이 가속화할 경우 김정은 정권은 생존을 위해 점진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러한 길을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확대하면서도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할 경우 주민의식이 성장해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면서 정권은 주민의 저항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김정은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핵 문제는 체제 안전보장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폐기하지는 않으면서 그럭저럭 버티기 전략을 답습할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고립은 불가피하다. 김정일 정권도 2002년부터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는 등 일부 개혁 조치를 시행하면서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개혁 조치들이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대됨에 따라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계획경제 체제를 복원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후계정권의 등장에도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있어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과거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 정권도 변화의 길목에서 고민하는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지만, 결국은 현상 유지를 추구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강제력을 동원해 주민들의 동요를 더욱 억압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도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초한 대북관은 위험하다.

(문화일보 201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