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선은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간 '여성도공'... "세계 최초 여성 세라믹 아티스트"

일본 큐슈의 도자기 명산지인 아리타를 찾아 ‘백파선(百婆仙)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구보타(久保田)씨를 만난 것은 8월23일이었다.
아리타는 사가현 니시마치우라군에 속한 정(町)으로, 우리식으로는 읍이나 면에 해당한다. 후쿠오카에서는 사세보행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이상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리타는 일본에서 도자기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도자기축제가 열리는 4월 하순에서 5월 하순까지 이곳을 찾은 인파는 무려 100만명에 가깝다. 우리 이천도자기 축제와는 시기도 겹치고, 인기도 마찬가지다.
아리타가 도자기 산지로 유명해진 것은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도공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였다. 이삼평과 백파선 등 조선 도공들은 아리타에 도자기용 '자석'이 발견되면서 이곳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백파선의 후손으로 14대 본가가 아리타에서 도자기점을 경영하고 있어요. 후카미(深海) 가문이지요.”
백파선갤러리를 운영하는 구보타씨의 소개다. 구보타씨는 시의원으로 백파선의 삶을 기리고자 개인자금을 털어넣어 백파선 갤러리를 열었다. 아리타에서 태어난 그는 벼 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으면서 지자체의원이 된 지 올해로 7년째라고 했다.
“백파선은 1656년, 96살에 타계했습니다. 그의 삶백파선의 삶을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요.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와 정착해서 후손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이어지길 원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고향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소개하는 구보타씨는 "아리타 보은사의 묘비에 백파선은 일족의 온화한 리더였다고 기록돼 있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후손들이 도자기를 만들며 아리타를 지켜왔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백파선은 1593년 임진왜란때 남편(深海宗伝) 및 일족과 함께 와도에서 철수하는 고토 이에노부(後藤家宣)에 잡혀서 일본에 왔다. 영주 고토 이에노부의 도움 아래 다케오광복사(武雄廣福寺) 근처에 체류하면서 그릇을 굽기 시작했다. 남편이 죽자 백파선은 큰아들 헤이타로(平太郎)와 일족을 지키며 70세 때까지 가마를 땠다. 아리타에 도자기용 돌이 발견되자 그는 일족을 이끌고 아리타로 옮겨, 아리타도자기의 초창기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아들 헤이타로한테 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이후 이름 높은 도공도 배출하면서 현재의 후카미(深海) 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가는 아리타에서 도자기점을 경영하고 있고, 회화도구상을 하는 후손도 있어요”
이렇게 소개하는 그는 “후카미 가문이 일본 각지에 퍼져 있다”면서 “백파선은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여성 세라믹 아티스트”라고 강조했다.백파선 갤러리에는 당시 백파선이 만든 작품은 없고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여류 도예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조선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는 널리 유럽에까지 수출됐습니다. 당시 백파선을 비롯해서 당시 조선 도공들이 만들었던 작품들이 사가현립규슈도예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시바타컬렉션이라고 합니다.”
1980년 문을 연 규슈도예박물관에는 에도시대 아리타도자기를 체계적으로 모은 시바타 컬렉션을 포함해 모두 1만4천여점이 보관돼 있다.
“아리타에는 ‘사라오도리’라고 해서 접시를 들고 추는 춤이 있습니다. 이 춤도 조선도공들이 추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구바타씨는 “최초의 여성 세라믹 아티스트인 백파선 전시회가 고향인 한국에서 열려, 그의 삶과 평화를 염원한 소망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면서 “아리타 도자기 산업과 한국의 도예가 다시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리타에는 이천에서 활발하게 도예활동을 하고 있는 이호영 한국예총 도예명인과 동행했으며,  백파선갤러리에서는 현지 사가현에서 도예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인 도예가 노진주씨가 구보타씨화 함께 우리 일행을 맞았다.

(2017-09-06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