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부 정치가들의 역사 인식과 관련된 발언은 어떻게든 겨우 지켜 온 '자제의 끈'이 한번에 풀린듯 한 인상을 준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코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아시아 제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사죄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고 침략, 전쟁의 책임을 경감시키거나 애매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아소 타로우(麻生太郎) 부총리와 국회의원 집단에 의한 선전성 야스쿠니 참배가 이어지고, 이와 관련된 국회 질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말해 군국주의 일본에 의한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기체번호 731

이것이 밑바탕이 된 것일까. 아베 총리가 항공 자위대 마츠시마 기지에서 기체 번호 '731' 연습기에 미소를 지으며 올라 탄 모습에서 이시이 부대라고도 불린 구 일본군의 생화학 부대를 떠올린 자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한국의 유력지 중앙일보의 논설위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논설위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20일자 컬럼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신의 징벌'이라고 말하고 '일본의 군국주의로 희생된 아시아인의 복수다. 특히 731부대의 생체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의 복수였다'고 말한 것에는 아연했다.

96조를 돌파구로 헌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아베 총리가 프로야구 시구식에 등번호 96번으로 등장했다. "96대 총리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퍼포먼스였다. '731'이라는 숫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시이 부대의 실태를 밝혀 스스로 그 존재를 공론화하여 정당화시킬려는 일본의 지도자는 없다. 경종을 울렸다면 아베 총리의 부주의, 관계자의 나태한 의식을 지적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오히려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차별 살육의 증거

결코 용서되지 않을 원폭 투하를 그것도 '신'의 이름을 빌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생각 밖이다. 원폭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 위협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 아니던가. 핵무기는 전세계를 한 순간에 공황으로 빠뜨릴 뿐아니라 동포를 포함한 많은 피폭자를 괴롭히고 있다. 이런 두가지 의미에서 무시무시한 현존 최종 병기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총7만명의 재류동포가 피폭돼 4만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두 도시에서 공동 편집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재해'는 조선인 피해자를 최대 총 4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구를 고려해도 동포의 희생 비율이 매우 높다.

내무성 경보국이 1944년에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재류 동포는 히로시마시에 약8만2,000명, 나가사키에 5만8,600명이 있었다. 가혹한 상황을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했던 이들 동포의 머리 위에도 원폭이 떨어진 것이다. '신의 징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차별 대량 살육 병기라는 증거다.

한일간에는 협조하는 점도 많고 마찰하는 점도 수 없이 많다. 한류가 일세를 풍미하고 있는 반면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라고 외치는 집단이 인터넷 세계에서 가두 시위를 전개할 정도로 성장했다. 역사적으로 연이 깊은 이웃으로서 알력을 최소화하고 공감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한일 공감의 명언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이 말을 무기로 삼는 정치가와 저널리스트 등 오피니언 리더일 것이다. 인터넷에 악성 매도가 넘치고 실제 사회에서도 헤이트 스피치가 만연한 상황이라 그 책무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무겁다. 같은 편으로부터 환영받기 위해 말하고 싶은 것을 내뱉는 것은 그 책무에 역행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핵심을 피하지 말고 말할 것은 말해야 한다. 정말 화를 참지 못할 때야말로 서로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도량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명언이 있다.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말에 대한 경고다. 한일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지금 가장 일깨워 주고 싶은 명언이다.

(2013-05-30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