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100년사' - 바로잡아야 할 사실을 직시하며
을사조약은 강제적 체결이었다

'을사보호조약'(제2차 한일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된지 17일로 정확히 100년이 된다. 한국의 외교권 박탈과 조선통감부 설치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조약으로 일본은 한국에 실질적인 지배체제를 마련했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이 조약을 '재갈'을 뜻하는 '勒'자를 인용하며 '늑약(勒約)'이라고 부르고 있다.

재일동포사회가 을사조약을 기점으로 가혹한 식민지지배 정책으로 인해 파생됐다는 인식 아래 민단은 올해를 '재일 100년'로 지정, 역사자료 보존이용기관의 설립을 추진해 왔다. 이 시설은 도쿄 미나미아자부(東京 南麻布)에 있는 한국중앙회관 별관에 신설, 이름도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으로 결정되어 24일 일반공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재일동포의 역사를 둘러싸고 두가지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하며 거기서 한가지 시도를 위해 주력할 필요가 있다. 자료관의 기능은 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요소의 하나는 가치관이나 귀속의식의 다양화에 따라 국적의 선택을 포함한 자기실현의 방도를 다양화시켜 유동성이 강해지고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모습 그 자체이다. 나머지 하나는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 2010년까지 역사에 대한 인식마찰이 더욱 심각해 질 가능성이다. 그리고 '한가지 시도'란 교착되는 두가지 요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재일동포의 역사를 스스로 정리하고, 거기서 도출되는 역사관을 중심으로 자의식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근대의 한일관계사에 대해 합병 100년을 중심으로 총점검해 보자. 합병조약은 유효한 것이었을까, 당초부터 무효했던 것이었을까, 식민지 지배는 어떤 영향을 가져왔으며 그 후 한일관계를 어떻게 규정해 온 것일까, 정치적 의도에 의한 유언비어를 포함한 논의를 재연시킴으로써 역사적 마찰은 예전 이상으로 더 격화될 것이다.

쟁점이 되는 역사인식은 재일동포사회와 우리가 서있는 역사적, 정신적 기반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일본은 현재 정주외국인에 대한 처우를 애매한 상태로 방치한 채 '국민보호법'이라는 이른바 유사입법을 잇따라 통과시키고,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워 '국방의식'을 높이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역사를 청산하는데 정면으로 대처하지 않고, 국가주의적인 경향을 강화시키려 하는 일본은 재일동포사회의 형성과 부당하고 과혹한 식민지 지배 정책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정하려 하지 않고, 합리화시키는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자기정당화한 역사인식을 재일동포정책에 대한 근거로 삼아온 것이 바로 일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재미일본인 운동에서 얻은 교훈

미국은 제2차대전 당시 12만명에 이르는 재미일본인을 내륙지로 강제수용했다. 미국의회는 1988년에 이 과오를 인정, 신규 법규를 마련해 재미일본인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함과 동시에 1인당 일률적으로 2만달러를 보상했다. 이 당시 미국경제는 부진한 상황이었으며 정부는 거대한 재정적자로 고심하고 있었다. 거품경제의 절정에 있었던 당시 일본자본에 의한 미국자산의 매수나 아시아계 이민에 대한 반발도 심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양심'을 발로한 미국도 그렇지만 운동을 주도하던 활동가마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성과를 거둔 재미일본인의 운동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1960년대의 공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부터 시작한 이 운동의 주도자는 수용소 생활을 체험한 1세, 2세가 아닌 전후의 평화스러운 시대에서 자란 3세, 4세였다. 그들은 '강제수용의 추적 체험'이나 옛 수용소 부지를 찾아가는 '순례여행' 등 캠페인을 통해 재미일본인 사회의 역사를 더듬어 봤다. 그 결과 바로잡아야 할 역사가 잊혀지는 채 그냥 놔두고서는 자신들의 정체정이 없어질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와 재미일본인과는 거주하는 나라, 뿌리를 두는 나라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1세, 2세의 시대를 추적 체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욕구에 의한 것이며 스스로의 역사를 깊이 살펴보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 보편적인 진리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것은 한편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후세를 계속 각성시키는 '역사'를 남기는 사명이 되기도 한다.

동포다운 역사관을 갈고 닦아

우리에게는 이미 뜨겁게 논할 만한 소중한 역사가 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명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고정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재일동포의 역사를 더욱 발굴해 나가며 자랑스러운 선구자의 업적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또 방문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각지에서 기획전시나 이벤트를 전개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자료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을 충실히 하고 존재감을 높여나갈 것이 틀림없다.

자료관은 우선 꾸준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재일동포의 발자취가 이제 개성이 넘치는 역사가 됐음을 증명, 후세의 정신적 지주의 상징이 될 것이다. 둘째로 조국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근현대사가 재일동포 없이는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셋째로 일본인들에게는 재일한국인이야 말로 서로 공생해야 할 존재임을 인지시키고, 국제화를 주도하는 장이 될 것이다. 넷째로 재미일본인 등 세계의 소수 민족들과 연계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될 것이다.

사람으로 사는 이상 어디의 누구든지 짊어지게 되는 것이 역사이다. 그리고 국적이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도 그 역사는 선택할 수 없다. 이러한 진리를 소홀히 하지 말고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재일동포다운 역사관을 길러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2005-11-16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