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경수 교수 “두 마리 토끼잡이… 민족정체성 유지, 주류사회 진출”

재외한인학회, ‘재외동포의 주류화’ 국제학술세미나 열어

재일동포로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이며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진창현(1929~2012) 명장은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반면, 일본의 대표적인 한상(韓商)인 한창우 마루한 회장은 “일본에서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일본국적을 취득할 필요가 있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갖는 것과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식민시대 ‘지배와 피지배’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재일동포사회에서 ‘주류화’를 둘러싼 담론은 생각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라경수 가쿠슈인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교수는 “재외동포재단법에도 언급된 ‘민족정체성 유지’와 ‘주류사회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재일동포들에게 동시에 잡게 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되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외한인학회(회장 최영호), IOM이민정책연구원(원장 장준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민족공동체연구센터(센터장 윤인진)는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청산MK문화관 201호에서 ‘재외동포의 주류화: 거주국 주류사회 진출 현황과 과제’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라경수 교수는 ‘일본 속의 재일한인: 과연 ’주류화‘가 가능한가?’란 주제를 발표하며, “일본인으로 귀화했다고 해서 민족정체성이 반드시 약화되는 것도 아니며, 귀화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주류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주류화 개념을 재일동포들에게 적용시킬 경우에는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재일동포사회에서 ‘주류화’는 현지 주류사회에 편입됨을 넘어 ‘동화’ 혹은 ‘귀화’하는 것이라는 논리적 비약과 오해가 발생하기 쉬운 개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라 교수는 재일동포들의 ‘주류화’를 둘러싼 쟁점과 한계로 △일본의 우익화 현상 강화로 재일동포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점 △재일동포사회의 변용과 다양화 가속(세대교체 및 정체성 변화) △재외선거 등을 둘러싼 본국과의 관계설정 변화 가능성 △주류화 개념이 갖는 불분명성과 모순성 등을 제시하며, “재일동포사회의 특수성과 시대성에 걸맞는 ‘주류화’의 새로운 기준과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에서 제시한 개념 ‘주류화’보다는 ‘정주화’로 대체할 수도 있으나, 이 역시 너무 강요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며 “앞으로 재일동포사회가 일본 내 다른 소수민족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석원 교수 “日귀화, 권리획득 또는 在日의 소멸?”

이날 학술대회에서 송석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재일동포의 주류화에 있어서 주요 이슈 중 하나로 패전 후 일본 내 공산주의자로부터 본격 제기됐던 ‘참정권 획득운동’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제시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일본 내 참정권의 범위는 국정선거(총선거: 중의원선거, 참의원선거)와 지방선거(도도부현 지사 및 의원선거, 시정촌의 장 및 의원선거)로 나눌 수 있다. 또, ‘외국인선거권’에 대한 학설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참정권의 행사 주체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정선거에는 ‘국민’이라는 자격이 필요하지만, 자치를 실현하는 지방선거 주체는 ‘주민’이라는 자격이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자민당의 관련 질문에 “지자체가 국가의 통치기구의 불가결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 93조 2항에서 말하는 ‘주민’은 지자체 구역 내에서 주소를 갖는 ‘일본 국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송 교수는 “이는 평소 재일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긍정적 입장을 견지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조차도 이를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해석했다.

송 교수는 라 교수와 마찬가지로 재일동포사회에서 일본귀화(국적취득)를 통한 ‘권리획득’이라는 관점과 ‘在日(자이니치=재일동포)의 민족정체성 소멸’이라는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외국인의 ‘목소리’ 수렴창구로 지방참정권과 더불어 재일외국인의 의견을 청취하는 ‘외국인 시민회의’가 있지만, 92년 오사카부가 설치한 ‘재일외국인문제유식자회의’는 참여자가 지극히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선별적, 행정편의적 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윤인진 교수 “정부, 미래 동포사회에 대한 선제적 대응 부족”

이날 윤인진 고려대 교수는 ‘재외동포 주류화의 개념과 지표’를 발표하며, “주류화란, 거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의 기회구조에 주류 민족집단과 동일하게 참여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태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즉, ‘주류화’는 재외동포가 거주국 사회에서 일차적으로 체제차원에서 자기개발과 발전의 공평한 기회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재외동포의 주류화를 측정할 수 있는 측정 지표로 △경제(소득 및 직업 동등성) △사회(교육 동등성) △문화(거주국 언어구사 능력) △정치(유권자 및 피선출직 비율) 등을 제시하며, “주류화의 관점은 이민자 사회의 다양한 양태를 단일한 분석틀을 이용해 종합적이고 비교가능한 분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주류화 관점은 한인사회 변화와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유용하다”며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은 여전히 1세대 중심에 머물고 있어서 차세대가 주역을 감당할 미래 동포사회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류화 지표 및 지수를 개발함으로써 후속연구를 촉진하고, 주류화에 대응하는 정책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외에도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재미동포의 미 주류경제 및 정치참여(민병갑/퀸즈칼리지· 김치곤/라이트 스테이트대) △뉴질랜드·호주한인들의 주류사회 진출(송창주/오클랜드대) △조선족의 주류사회 진출 및 그 한계성(허명철/연변대) △중앙아시아 주요 국가 내 고려인의 주류사회 분포현황과 과제(이병조/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재미한인의 종교와 선거정치 참여(오숙희/고려대) △재외동포의 주류언어 사용실태 연구(선봉규/전남대) 등이 발표됐다.

(2016-05-02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