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걸어야

"우리들 재일한국인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의 권리를 위한 '인간 해방'을 선언한다" - 이와 같이 시작되는 '재일한국인 생활 옹호를 위한 인권 선언'은 1977년 3월28일 제27회 정기중앙위원회에서 채택됐다. 오늘은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나는 날이다.

200항목의 차별

'민단 인권 선언'은 "200항목에 걸친 민족 차별은 우리에 대한 인권 유린이자 인간 학대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고 일본국에 대해 "재일한국인 인격의 자유와 발전에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제한"을 철폐할 것과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의 보장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을 내외에 천명했다.

김대중씨 납치 사건(1973년)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1974년)으로 인해 한일관계는 국교단절에 치다를 정도로 험악한 시기였다. 그러나 민단은 '선언'을 채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별 철폐 100일간 운동'을 전개하고 전 조직이 통일된 요망서를 들고 각 지방 자치체에 맹공을 가했다. 그 후 매년 운동 강화 기간을 설정하고 중점 과제에 집중적으로 임해 '200 항목에 이르는 민족 차별'의 대부분이 철폐된 것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1965년 법적 지위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지속하면서 복지 정책 또한 급속히 정비해 나갔다. 그러나, 일본은 신설된 200항목에 가까운 복지 제도에 국적 조항을 삽입해 지위 협정문에 없었다는 이유로 동포를 배제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생의 주요 국면에서 겪었던 차별이 정착되고 있었다.

동포는 해방후 30년간 6·25 전쟁 특수를 계기로 고도 성장을 이어간 일본 경제에서 고립되어 사회 저변으로 밀려났다. 복지 정책에서 배제된 상태로는 생활 차별이 보다 확산되고, 빈익빈의 악순환이 보다 많은 차별을 조장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현재 일본은 워킹 푸어(일하는 빈곤층)가 늘어나는 반면 복지 예산이 삭감돼 재도전의 기회조차 줄어드는 양분화 사회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 문제가 일본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동포는 이미 자신의 출신과 국적을 이유로 워킹 푸어가 될 숙명에 놓여져 있던 것이다.

요구에서 공생으로

당시 이미 일본에 정주할 것을 전제로 살아가는 2세, 3세가 80%를 점하고 있었다. 민단은 강령에 '재일동포의 권익옹호'를 내세우며 이를 등한시해 왔던 과거를 통철하게 반성하고 취직 차별과 사법 연수생 불채용을 둘러싼 2세의 투쟁, 민단 지역 조직과 시민 단체의 선구적인 운동을 적극 흡수해 동포 생활에 밀착한 과제를 전국 규모의 조직을 통해 조직적이자 지속적으로 추구해 동포 사회의 레벨업을 인솔해 왔다.

'민단 인권 선언'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운동은 크게 3단게를 거쳤다. 국민연금 및 아동수당의 적용, 공영 주택 입주 및 주택 금융 공고의 융자 실현 등 일본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차별 철폐를 중점으로 다룬 제1단계. 외국인등록법의 지문 날인과 상시 휴대 제도 및 공무원 채용 국적 조항의 철폐에 나선 제2 단계. 그리고 현재 지방참정권 획득 운동에 전력을 기울이며 남은 현안 해결에 임하는 제3단계다.

민단은 얼마전 지문 날인 제도 철폐 운동을 통해, 단기간에 목표 100만명을 크게 상회하는 181만명의 서명을 모으는 등 조직력을 발휘했다. 또, 1만명 이상의 지문날인 거부, 유보자를 앞세워 당국과 전면 대결하는 등 과감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민단은 생존권 확보에서 민족적 존중의 획득, 나아가 공생사회 실현으로 운동을 발전시켜 많은 지방 자치체와 시민 단체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운동에서 얻은 것에는 정신적 재산도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운동 주체가 된 2세, 3세들은 민족 차별 철폐를 호소할 정도로 스스로 민족적인 사람인가 '차별 받지 않겠다'고 당당히 주장할 정도로 '차별 받지 않을' 자기를 확립할 수 있는가 자문을 거듭해 왔다. 여기서 체득한 것이 민족적 자존심은 인간의 양심에서 보장받아야한다는 섭리다.

그러한 근거가 없는 '자존심'은 자존심이라 할 수 없으며 단순한 오만이자 불손에 지나지 않는다. 민단이 전개한 운동 성과의 은혜를 입으면서 민족과 인간의 양심을 포기한채 아무런 정당성 없이 정치적인 사혹에서 '인권'을 주장하는 일부 동포 지도자에게 수치심을 안겼다고 할 수 있다.

자존심의 각성을

일본인의 강한 경계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지방 공무원의 국적 조항 완전 철폐, 지방참정권 획득 등 공생 사회를 향해 크게 전진한다 해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재일동포에 있어 올바른 인권의 확립이란 무엇인지 '민단 인권 선언'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단은 적어도 일본 사회에 '요구하는' 것을 넘어 공생 이념을 내걸고 일본 사회를 '이끄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높여왔다. 알기 쉬운 제도적 차별과는 달리, 정신적 차별은 파악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타인에게 부탁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고 남을 깍아내려 우위를 점할려는 수법은 정신적 차별을 증폭시킬 뿐이다.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일본에 사는 동포가 공생 사회 실현을 저지하는 장애가 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 재일동포로서의 자존심을 갖고 각성하기를 촉구하는 바다.

(2007-03-29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