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민중의 마음을 생각하라

일본국 수상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둘러싼 논의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관계국의 국민감정에 상처를 남기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기세와 깊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중·일 3개국을 미래지향이라는 지평에서 어두운 과거의 늪으로 끌어들이려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A급 전범을 모시는 변명

야스쿠니신사에서는 보신(戊辰)전쟁이나 세이난(西南)전쟁 전사자 즉 반정부군의 전사자를 모시지는 않았다. 청일 및 러일전쟁의 전승을 축하하는 '군사신사'의 성격이 강했다. 다른 전통적인 신사와 마찬가지로 "무념과 원한을 품은 영혼을 달래기 위함"을 취지로 한 것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는 이 전쟁을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이라는 역사관을 바꾸지 않고 있다. 1978년에 A급 전범자 14명을 합사한 궁사는 1989년에 "도쿄(東京)재판을 부정하지 않으면 일본의 정신부흥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여 이른바 A급 전범도 함께 모셔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도 중국도 무고한 전사자를 애도하는 데에는 아무런 반대도 없다. 군국 일본의 상징임을 부정하지 않고 전쟁을 긍정시하는 입장에서 A급 전범자도 합사하는 신사이기 때문에 이의를 호소하는 것이다.

원성의 주최가 되고 있는 코이즈미(小泉) 수상이 5번째 참배를 강행한 17일에도 예전과 같은 발언을 하는데 그쳤다. 그가 발언한 내용은 (첫째) 전사자의 소중한 희생 위에 오늘날의 평화가 있다, (둘째) 애도라는 마음의 문제에 외국이 간섭해서는 안된다, (세째) 한·중 양국 모두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 라는 3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그 심정에 대한 표현이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아니면 안되는가 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시한 채 상대방이 지구전에서 질 때까지 계속 참배하겠다는 대담한 태도로 선언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수법을 반복 주입하면서 국민 사이에서도 같은 인식이 보급돼 이제는 상당수의 일본인 인식으로 정착된 느낌이 든다. 그 만큼 문제의 뿌리는 깊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상의 대담한 선언

첫째로 '소중한 희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코이즈미 수상은 '전후 60년 수상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인정, "다시 한번 통절히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뜻"을 표명했다. 이 부분은 10년전의 '무라야마(村山) 수상담화'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코이즈미 담화의 뜻은 후퇴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무라야마 담화에는 있었던 '국책 잘못'이라는 문언을 삭제하고 '지난 대전'의 총괄 및 '대전'과 식민지배 및 침략과의 관계를 애매하게 한 것, 반면에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전쟁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목숨을 잃은 많은 분들의 소중한 희생 위에 있다"는 무라야마 담화에는 없었던 인식을 첫 부분에서 강조한 것, 이 2가지 의미는 매우 크다.

이는 '전쟁' 일반을 부정하되 '지난 대전'의 '대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권리를 유보한 데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무고한 전사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소중한 희생'이라는 부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표현으로 뭉뚱거림으로써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하는 것이다.

'국책의 잘못'으로 인한 '희생'이 왜 '소중한 희생'으로 바뀌는 것인가. '소중한 희생'된 사람들에 의해 침략·전쟁의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 당한 아시아의 민중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소중한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일본인이 '지난 대전'에 대한 반성의 뜻을 내외에 언동을 통해 계속 밝혀 나가야 만이 가능할 일이다.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강한 만큼 일본에 대한 아시아의 불신 또한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코이즈미 담화의 핵심을 이루는 "일본의 전후 역사는 바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실천한 평화의 60년"이라는 자기인식마저 공허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둘째 "외국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는 반대로 야스쿠니신사에 군인·군속으로 희생된 2만여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왜 함께 모시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이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듯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시비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본의 역사로서 일본 한 나라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근대사는 아시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또한 가해자 측면에서 지적받아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아직까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입장에서 상처를 더욱 자극하지 않도록 선처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내외 대립을 경화시켜

여기까지 보면 셋째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라는 태도의 거만함은 분명할 것이다.

잇코잇키(一向一揆= 14~16세기에 걸쳐 일본 각지에서 발생한 종교적 폭동) 발생지인 킨키(近畿), 호쿠리쿠(北陸), 토카이(東海) 지방에서는 폭동이 종식된지 400년 이상이 지나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원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보신전쟁에서 1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쵸슈(長州)와 아이즈(會津)의 적대감정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하기시(萩市)가 화해·교류를 제안해도 아이즈시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심한 공격을 당한 측의 감정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동일국가·동일민족 사이에서도 그렇다면 타국·타민족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마음의 문제'라고 한다면 코이즈미 수상은 한국과 중국에도 역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성격을 무시한 채 '(일본인의) 마음의 문제'에 '외국이 간섭한다'는 구도를 강조하는 코이즈미 수상의 수법은 일본과 아시아에 국수주의를 상승시킬 우려가 있으며, 동아시아의 장래에 등 돌리는 자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2005-10-26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