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안정의 기축으로

공유목적 높이 내걸고 '역사 견해'의 내실화를

40년전의 6월22일 14년의 세월이 소요된 한일회담이 타결돼 양국은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한일관계는 질과 양 모두 비약적으로 향상된 반면, 회담에서의 역사적 평가는 심하게 대립됐다.

법적지위를 정하는 기점

그러나, '기댈 곳 없는 백성'으로서 적빈 생활을 겪게 되고 '재류자격 없는 재류'인 채 방치돼 온 재일동포에게 있어, 한일회담은 법적지위가 정해지는 기점이 되었다는 평가는 확고한 것이다. 이 회담은 원래 재일동포의 처우로 고민하던 연합국군 총사령부와 그에 동조한 일본정부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우리는 독자적인 시점으로 봐도 될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자자손손 주어질 '특별영주'를 획득하고, 많은 행정차별을 철폐시켜 왔다. 정주외국인과 일본인이 같은 주민으로서 보다 풍요로운 지역사회를 구축하고자 하는 공생이념의 정착도 진전됐다. 한일회담에 임한 일본정부의 대(對)동포정책의 기조는 송환·추방에 있었으며, 여론도 그에 동조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견해에 한해서는 한일회담 당시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였다. 식민지 지배는 한국에서 감사받을 일이지 사죄할 필요는 털끝 만큼도 없다는 태도였지만, 1995년 '무라야마(村山)수상 담화'와 이를 확인한 1998년 공동선언에서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사실을 인정하며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를 표명하게 됐다.

재일동포의 노력

이러한 변화는,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파생된 재일동포사회가 민족적인 자긍심과 공동체로서의 유대를 잃지 않고, 한일 우호의 고리가 되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일본인에게 한일관계사를 끊임없이 인식시켰다는 사실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예전에는 비정상적인 요구·견해로서 배제돼 온 일본사회에서, 생활자단체의 입장에서 하나 하나 쌓아 올린 선배 동포의 노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민단은 '한일회담 촉진·법적지위 요구관철'을 기본자세로 하면서도, 한국대표단의 소극적인 자세에 대해서는 "대일 굴욕외교 반대"를 외치며 엄격히 대처하고, 대표단의 퇴거를 요구하는 행진시위까지 전개했다. 그러나, 국교정상화와 선린우호의 구축이야말로 양국의 발전과 재일동포사회의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은 일관했다. 지금도 그 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쌍방에게 고조되는 내셔널리즘이 서로 부딪치는 험악한 상황을 보면서 보다 확고해지고 있다.

동서냉전이라는 경직된 구조 아래에서는 같은 서쪽 진영에 속하는 양국이 관계를 악화시키더라도 국제역학에는 큰 영향을 미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냉전이후의 유연한 구조 속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역학에 민감하게 반영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지역은 북한의 핵문제 이외에도 한·중·일 3국간이 서로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아직까지 대국간에 영토문제 등의 불씨가 존재하여 대규모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 간주되고 있다.

한일관계는 이미 2국간의 이해(利害)만으로는 처리되는 관계가 아니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협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변국과의 협조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역사인식 문제로 내셔널리즘이 높아져, 그 결과 역사문제를 한층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은 시급히 단절시켜야 한다.

식민지지배의 청산을 방치해 둔 것과, 스스로의 원칙적 입장을 관철하지 못했던 한국정부는 자국민에게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주장에 맞서 대일 청구권에 속하는 자금을 '경제협력'이나 '독립 축하금' 명목으로 바꿔버린 일본정부는, 이제와서 '진실된 사과'를 표명한 정부견해를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만큼, 한국과 스스로에게 빚을 진 것이라 할 수 있다. 40년전 한국이 겪었던 경험의 쓴맛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견해의 내실화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인의 각오를 살리는 길

많은 화근을 남긴 한일회담은 타결까지 14년이나 소요됐다. 얼마나 세월을 들였어야 만전했던 것일까.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준에 이르는데 무려 30년을 소요해야만 했다. 한일회담 당시, 민단 중앙본부 단장을 역임했던 권일민(權逸民, 고인)씨는 회고록에서 동포가 다소 희생이 된다 하더라도 장래적으로는 스스로를 위한다는 각오로, 한일관계의 안정·발전을 기대하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선(先)국교·후(後)현안의 자세로 회담에 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와 그 동안의 노력과 경험이 없었다면, 역사인식을 정리하기 위한 양국 정상이 마주보는 자리조차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가치관을 공유하는 양국은, 동북아시아를 안정시키고 동아시아의 알찬 미래를 구축하는 기축으로서의 사명이 있다. 역사인식 문제는 다시 한번 고차원적인 목적을 공유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시각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05-06-22 민단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