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1-09-22] 조회수 : 1392
도쿄올림픽 안창림 노력의 동메달 … 재일동포선수 45년 만에 메달
[ 시상대에 오른 안창림 ]
[ 3위 결정전에서 업어치기로 승리 ]
일본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이 7월26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가운데 재일동포 3세 안창림(27)이 3, 4위전에서 오르조프(아제르바이잔)에게 종료 7초 전 업어치기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재일동포 메달 획득은 박영철이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45년 만이다.
⚪동포의 지원에 감사⚪
안창림은 첫 경기인 2차전부터 3차전, 8강전을 모두 연장전 끝에 돌파했다. 준결승도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지도 3회를 받아 반칙패를 당했다.
경기 후 금메달을 못 따서 납득은 안 되지만 후회는 없다며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했다고 말했다.
안창림은 쓰쿠바대 2학년이던 2013년에 전일본 학생 유도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일본 대표팀의 귀화 요청을 거절하고 이듬해 한국의 유도 강호인 용인대에 편입했다.
“당시 대학 감독이 일본으로 귀화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한국 국적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이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재일교포는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으로 불린다” 며 차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을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었다며 “제 모습을 보고 재일동포 아이들이 큰 힘과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나의 정신적 기반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만들어졌다며 지금도 많은 재일동포들이 지원해 주고 있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고 말했다.
유도의 성지로 불리는 부도칸에서의 동메달 획득은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경기 때는 감정을 모두 버리고 기계적으로 집중했다고 말했다.
라이벌인 일본의 오노 쇼헤이와는 맞대결 없이 올림픽을 마쳐 못 만난 것은 아쉽지만 “이번 목표는 오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금메달이었다”고 말했다.
올림픽에서 재일동포로서의 메달 획득은 과거 김의태(동=64년 도쿄), 오승립(은=72년 뮌헨), 박영철(동=76년 몬트리올)의 3명. 안창림의 메달은 45년 만이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교토에서 자란 안창림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토 현지 도장에서 유도복을 입고 다니며 꾸준히 힘을 키웠다. 중학교 진학 시에 벌써 유도가로 살아갈 각오를 굳혀 뛰어난 지도자가 있던 현지의 하치조중에 입학. ‘3배 노력’ 을 마음먹고 아버지와 매일 새벽훈련 등 단련을 거듭해 3학년 때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강호의 토인학원고(카나가와)에 진학해 톱 선수와 서로 경쟁해, 츠쿠바대에서는 학생 대회의 전국 우승을 할만큼 성장했다. 일본 국적 취득을 권유받았지만 대학 2학년 때 자신의 뿌리인 한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재일대표로서 싸운다는 강고한 뜻을 가슴에 품고 싸워왔다.
⚪전국체전에서 큰 경험⚪
안창림의 결단에는 고교 3학년 때 재일본대한체육회의 권유로 처음 참가한 한국의 전국체전의 경험이 컸다.
2011년 경기도 대회에 처음 출전해 국내 종목 고교 남자 개인전 73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한국 고교 대표 당시 전국선수권대회 챔피언 엄재윤(강원도)과의 8강전에서 안창림은 전방위 공세를 펼치며 판정승을 거두며 4강에 올랐다.
결승전을 건 오인혁(충남)과의 준결승은 기술 등에서 압도하였지만 막판에 역전 한 판으로 졌다.
안창림은 “순간의 불찰이었다. 잘 연습해서 꼭 다시 돌아와 금메달을 노릴 겁니다” 라고 각오를 보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노리기 시작했다.